다사다난 했던 명절을 보내고

문득 생각난 영화 'B급 며느리'



개봉 직후에 예고편을 눈여겨 봤지만

미루고 미루다가 이제야 보게 되었다.




영화의 시작은 아주 흥미진진했다.


"그래서 추석때 안갔어요. 완벽한 추석을 보냈죠"라며

시종일관 밝은 표정의 며느리와 우는 시어머니의 모습이 대비되며

아주 모순적인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뒤이어 나오는 아들과의 대화에서

며느리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 시어머니.


그런 시어머니의 본심을 집약적으로 나타내는 대사 한마디.

"다 니 아들한테 다 당할겨'"





그리고 시어머니가 말씀하시는 "며느리가 할 일은.."

제사와 생신을 비롯한 집안의 대소사 참석하기.

시아버지에게 안부인사 하기.




시어른들은 '며느리가 도리를 다하지 않는 것'에 불만을 갖고,

며느리는 나름 노력한다고 하는데도 그런 며느리를

성에 차지 않아하는 시어른들의 모습에 답답함을 느낀다.


왜 며느리에게만 의무와 도리가 있는걸까?

('며느리'라고 적었지만 , 아랫사람까지 포괄하는 의미이다)

어른들의 의무와 도리는 없고, 대접받을 권리만 있는 걸까?

정녕, 이세상은 먼저 태어나는 것만이 장땡인가?


며느리에게는 의무와 도리만 있고

어른의 의무와 도리는 거론되지 않는 이 현실이

나는 좀 답답하게 느껴진다.





다시 영화얘기로 돌아가서


남편과 차안에서 말싸움을 벌이다

"아빠... 엄마... 싸우지마"라며 울먹이는 아들의 말에


"미안해. 토론 한 거야."라는

어릴 때 한번쯤은 들었을 법한.

낯설지 않은 아주 뻔한 거짓말로 아들을 안심시키는

며느리 진영씨와 그 남편 호빈씨.




그 와중에 아들은

"엄마, 아빠한테 소리치지 마"라고 얘기한다.



다른 장면에서는

"아빠, 엄마한테 화내지 마"라고 얘기한다.


누가 큰소리를 내는지. 누가 화가 났는지.

어린아들은 주체를 콕 집어서 얘기를 할 정도로

어른들의 말에 귀기울이고 있다.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깊어지는 갈등 속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찌들어가고 있는 남편 호빈씨.

(이 부분에서 토실군은 남일 같지 않다며 가장 큰 공감을)






심리상담센터에 두번 다녀왔다는 남편 호빈씨.

그 결과는 "아주 전형적인 고부갈등입니다"



얘기에 빵 터지는 사람들과

'사람들은 내가 고통받는 것을 좋아한다'며

덤덤하게 얘기하는 남편 호빈씨.



사람들은 호빈씨의 고통에 웃는게 아니라

그 상황에 너무나도 공감이 되기 때문에 웃을 수 있는게 아닐까.

남일 같지 않아서.




이 다큐멘터리 영화에 '에밀레다큐'라는 별칭을 붙였다고. 

그 이유는 "저를 갈아 넣으면 멋진 다큐가 하나 나올 것 같습니다"





부부의 갈등이 극에 달한 뒤에 나오는 영상 한편.

아주 행복해 보이는 만삭의 임산부인 며느리 진영씨.

(이부분에서 살짝 코끝이 찡했음)




그리고 울면서 얘기하는 며느리 진영씨 속마음.


이 결혼생활에 뛰어들기 전에

"내가 얼마나 행복하고 건강했던 사람이었는지"






밥상을 차려주고 옆에 앉은 며느리 진영씨는

남편 호빈씨에게 얘기를 하나 해준다.

(남편분 밥이라도 편하게 먹게 해주시지ㅠㅠ)


아들이 어린이집에서 맨날 늦게 온다며

"집에 안간다고 그렇게 울었대"




이 부분에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들은 '스트레스'라는 개념조차 없을 어린 아이인데,

엄마아빠가 싸우는 모습을 보고

그 사이에서 알게모르게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다.

그런 아이의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


사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가해자와 피해자가 불분명한 사이에

나는 어느순간 가해자가 되어있었다.




영화는 며느리 진영씨가 시댁에 찾아가는 장면과

다시 밝아진 진영씨의 모습을 보여주며 마무리된다.




그리고 나레이션이 나온다.


"확실한 것은 누구도 강요하지 않을 때

스스로 걸어들어갔다는 것이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바인 것 같으나

나는 이 대사가 공감되지 않는다.


스스로 걸어가는 며느리의 모습이

자의가 아닌 타의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가족의 평화를 위해'

'나 하나만 희생하면 되니까'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에필로그 같은 쿠키영상에서

아들과 시어머니의 대화장면이 나온다.


새로 본 며느리한테는 전화 자주 하지말라는 아들의 말에

둘째 며느리는 알아서 전화한다며 "A급"이라는 시어머니.







'B급 며느리'의 행태에 속이 좀 통쾌해지려나

대리만족하려고 찾아본 영화.


근데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마음이 힐링되기는 커녕

남일 같지 않은 현실에. 답도 없는 상황에.

마음이 더 답답해진다.

(다들 이러고 사는구나 하는 위안은 얻을 수 있음)



결혼 전에는 공감 못했을 얘기만,

결혼하고 나니까 모든게 남일 같지 않다.


여러모로 많은 생각이 드는 영화이다.



+ 참고로, 이재명 시장이 동상이몽에 출연했을 당시

이혼전문 변호사로서 한 얘기가 몇가지 있다.


'이혼의 가장 많은 원인은 고부갈등이다'

'아들에 대한 지나친 애정이 고부갈등을 유발한다'

'아들이 엄마한테 가서 엄마편 들고 아내한테 가서 아내편을 들면

엄마와 아내의 사이가 더 멀어져 고부갈등이 심화된다'


고로, 영화 내용처럼 엄마 앞에서 엄마편을 들고

아내 앞에서 아내편을 들면 고부갈등이 더 심화될 수 있음.



+ 근데 왜 며느리만 급으로 나누는거지?

시댁, 친정을 떠나서 B급 어른들도 많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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